우린 대만·중국 편가르지 않아요”… 신해혁명 100주년, 서울 한성화교소학교의 오늘 - 韓國漢城華僑小學

우린 대만·중국 편가르지 않아요”… 신해혁명 100주년, 서울 한성화교소학교의 오늘


지난 10일 서울 명동 2가 한성화교소학교(초등학교)에는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가 곳곳에 걸려 눈길을 끌었다. 이 학교에 청천백일기가 걸린 것은 1992년 한국이 대만과 외교관계를 끊은 뒤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학교 바로 옆에 있는 주한 중국대사관을 의식해 좀처럼 대만 국기를 내걸지 않던 이 학교에 청천백일기가 나부낀 건 신해혁명 100주년 기념식이 열렸기 때문이다.

1911년 10월 10일 중국 후베이성(湖北省) 우창(武昌)에서 발생한 신해혁명은 대만이나 중국 모두 중요한 기념일로 삼는다.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전제군주제를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세운 쑨원(孫文)은 대만은 물론 중국에서도 추앙받는다. 이 때문에 대만은 10월 10일을 쌍십절로 부르며 건국기념일로 지정했다. 중국은 마오쩌둥이 국민당 정부를 대만으로 몰아내고 중화인민공화국 정권 수립을 선포한 10월 1일을 국경절로 기념하고 있지만 신해혁명 기념일도 중시한다.

화교의 역사는 19세기 말 중국인 상인들이 대규모로 이주하면서부터 시작됐다. 1882년 동학농민혁명 진압을 이유로 파견된 청나라 군대의 병참을 지원하기 위해 따라온 상인들이 되돌아가지 않고 조선에 눌러앉으면서 이들이 화교로 불렸다.

이후 화교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전국 각지에 화교 학교들이 생겼다. 그중 한성화교소학교는 14개의 화교 학교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이 학교가 설립된 건 1909년으로 신해혁명보다 역사가 오래됐다.

화교학교에 대해서는 중국과 대만 모두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학교는 중국과 대만의 관계를 의식해 양측 관계자들을 따로 따로 불러 신해혁명 행사를 두 번 치렀다. 지난 5일에는 허잉(何潁) 주한 중국대사관 총영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교 102주년 및 신해혁명 100주년 기념 가을 운동회를 개최했다. 닷새 후인 10일에는 량잉빈(梁英斌) 주한 대만대표부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신해혁명 및 대만건국 10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국적 구분은 없다…학교에선 모두가 하나

중국과 대만 사이에서 불필요한 정치적 오해를 막기 위해 행사를 각각 치렀지만 이 학교에서는 국적을 떠나 선생님이나 학생 모두 하나다. 1960∼70년대에는 무려 2300여명의 학생이 등록해 2부제 수업을 했으나 지금은 학생 수가 많이 줄었다. 7186㎡ 규모의 이 학교에는 모두 18개 학급 558명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다.

52명의 교사 중에서 4명은 중국에서 초빙해 온 분이다. 이들 중국 출신 교사는 유치원 과정을 비롯해 영어와 무용, 음악, 중국 전통무술인 국술 등 다양한 분야를 가르친다. 이들 외에도 대만이나 한국, 캐나다 출신 교사들도 있다. 대만에서 대학을 졸업한 인턴 교사도 이곳에서 일한다.

재학생 구성도 다채롭다. 상당수가 대만 국적이지만 일부는 중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온 부모를 따라 온 학생들도 있다. 학교는 학생의 국적이 어디인지 학적부에 기록하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이곳에서 모두 함께 공부한다는 얘기다.

중국과 대만이 함께하다 보니 재미있는 광경도 연출된다. 4학년 여학생 12명이 신해혁명 축하공연에서 선보인 대만 소수민족 춤(農村曲)은 대만 출신이 아닌 중국에서 무용을 전공한 류잉(劉櫻) 선생님이 가르쳤다. 또 6학년 학생들이 선보인 부채춤(鐵扇舞) 무술은 중국에서 온 간위밍(干玉明) 선생님이 보충 지도를 했다.

조영미 화교학교 총무주임은 “이곳은 국적을 떠나 모든 화교 학생이 공부할 수 있는 장”이라며 “배우고자 하는 욕망을 지역에 따라 구분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부모 국적 따라 정규교육 인정 못 받기도

10일 오전 화교학교의 조립식 건물 2층 한 교실에서는 20여명의 학생이 손에 먹물을 묻힌 채 정성스럽게 붓글씨를 쓰고 있었다. 서예대회에 참가한 6학년 김가영(12)양은 정성스럽게 한 글자 한 글자 한자를 써 내려갔다.

黃河遠上白雲間

(황하는 멀리 흰 구름 사이로 흘러가고)

一片孤城万?山

(외로운 성 하나 높은 산 위에 있네)

羌笛何須怨楊柳

(오랑캐 피리소리는 어찌 원한 섞인 ‘절양류’ 곡조를 불어대나)

春風不度玉門關

(봄바람은 옥문관을 넘지 못하는 것을)

그녀가 써내려간 글귀는 당나라 시대 시인 왕지환(王之渙)이 쓴 양주사(凉州詞)였다. 이런 시 글귀를 초등학생이 쓰고 있는 게 놀라워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누가 지은 시고 무슨 뜻인지 아세요?

“아뇨, 잘 몰라요. 하지만 글자 하나하나는 무슨 뜻인지 알아요.”

당대의 유명 시인 중 한명인데 아직 그를 알기에는 어린 나이였던 모양이다. 그녀는 계속된 질문에 대답하는 게 부끄러웠는지 앞에 앉아있던 친구 국채정(11)양에게 딴청을 피우며 중국어로 재빨리 물었다.

“誰那走我的毛筆?”(누가 내 붓 가져갔어?)

“我也不知道”(나도 몰라)

그녀는 한국어와 중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6월 말까지 국내에 체류 중인 화교는 2만1363명이다. 화교학교와 인연을 맺은 학생들은 대부분 화교 3∼4세로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와 중국어 모두에 능숙하다. 국적은 대만일지 몰라도 이곳에서 태어나 생활하는 사실상 한국인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부모님의 국적이 어디냐에 따라 이곳을 졸업해도 정규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부모가 모두 대만 국적을 가진 경우에는 외국인으로 분류돼 한국의 중·고등학교 진학이 자유롭다.

문제는 부모 중 한 사람이 한국 국적을 가진 경우 자녀는 한국인으로 인정돼 화교 학교에 다니더라도 정규 학력을 이수한 것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 때문에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검정고시를 거쳐야 한다.

학사운영의 고충을 듣기 위해 수이샹친(隋象勤) 화교학교 이사장을 4일 만났다. 그는 2002년부터 학교 이사회에서 일했고 2004년부터는 한성화교협회 상임고문직도 맡고 있다.

-어떻게 화교학교 이사장을 맡게 됐나.

“저희 아버지 때부터 한국에서 살았다. 저도 나이가 내년이면 일흔이다. 화교는 이 땅에 산 지 100년이 넘었다. 그런데 정부는 우리를 외국인 취급한다(그는 줄곧 대만 국적을 갖고 있다가 10년 전쯤 사업을 위해 대만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화교 중 한국인과 결혼하는 비율이 60%가량으로 지금과 같은 한국 정부의 정책이 계속되면 이 학교는 조만간 없어지게 된다. 성공한 기업인이 조금씩 도와야 하지 않겠나.”

-학교가 없어진다니 무슨 뜻인가.

“외국인학교는 한국 법(초·중등교육법)상 한국인 학생의 입학을 정원의 30% 이내로 제한하도록 돼 있다. 그런 상황에서 법무부에서 지난해 국적법을 개정하면서 화교의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이중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만을 갖게 되면 정원을 초과하는 한국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그들은 불법으로 학교에 다니는 꼴이 되는 것이다. 화교의 상당수가 한국인과 결혼하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교과서나 학교 운영비 등은 어떻게 조달하는지.

“대만과 중국에서 1년에 각각 미화 4만 달러씩 보조해준다. 물론 나를 포함한 이사회에서도 기부금을 낸다. 한국의 도움은 거의 없다. 교과서는 대만에서 검정받은 것을 사용한다. 중국에서도 교과서를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 같다. 다만 역사나 사회교과서는 대만에서 제공한 게 아니라 자체적으로 만든 것을 사용한다. 대만 교과서는 중국 대륙 전체가 아닌 대만의 역사만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진 학생을 원한다. 다만 우리는 정치 문제에 관심 없다. 양쪽 사이에서 처신하기가 쉽지 않다.”

-중국어 열풍이 불면서 이곳 학교에 입학하려는 한국 학생들이 늘고 있다는데.

“입학 문의가 많다. 특히 중국에 3년 이상 거주했다가 돌아온 학생의 경우 이곳 학교에 입학이 가능하기 때문에 해외 유학을 보내기보다 이곳에서 더 교육시키려는 분위기가 있다. 이곳 학비는 한 달에 27만원이다. 해외에 아이 혼자 유학 보내면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들어간다. 한국 학생 중 입학 자격이 되지 않는 학생은 평생교육원이라고 해서 따로 교육을 시킨다. 그곳은 졸업증이 아닌 수료증을 준다.”

-이곳에서 배운 것이 국내에서 정규 학력으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들었다.

“학력을 인정받지 못해 검정고시를 다시 쳐야 한다. 상당히 시대에 맞지 않는 규정이다. 세계화 시대에 이곳 교육을 받은 학생이 다시 검정고시를 쳐야 하는 이중 부담을 안게 된다. 개선됐으면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6년 9월 한국 내 화교학교의 학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부당한 차별이라며 당시 교육인적자원부에 대책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교육부는 2009년 관련 시행령을 고쳐 학력 인정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시행령에는 국어와 국사를 연간 120시간 가르치지 않을 경우 정규 학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고 해 화교학교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화교학교가 국내에서 학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국어와 국사를 가르쳐야 하는데 다른 외국인 학교와 달리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수이 이사장에게 다시 물었다.

-이 땅에서 화교로 살면서 무엇이 힘든가.

“사실 전두환 대통령 집권 후반기에 화교에 대한 제재가 많이 풀렸다. 그 전까지만 해도 정말 할 게 없었다. 무역을 하기 위해 회사를 차려도 50% 이상 지분을 소유할 수 없었고 주택은 200평 이상, 사업지는 50평 이상 구입불가였다. 지금은 그나마 많이 규제가 풀렸지만 아직도 힘들다. 한국은 일본의 침략을 받았고 성씨를 강제로 바꾸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그런 경험을 한 나라가 화교와 같은 한국 내 소수인에게 강압적인 정책을 편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나도 사업을 위해 대만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얻었다. 한국이 남과 조금 다르다는 점을 포용하는 게 부족하다. 같은 생활권에서 살면 모두 한국사람 아닌가.”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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